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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룸메이드 일상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16-06-28 10:19:27
  • 조회수 4530
호텔 룸메이드는 한 사람당 하루 8시간씩 10여 개의 방을 담당한다. 베개 커버를 교환하고 각종 비품을 보충하는 등 체크해야 할 항목이 수십 가지가 넘는다. 경주 힐튼호텔의 하루 평균 시트 세탁량은 무려 1t. 예약 손님이 이전에 이용한 경험이 있는 경우라면 컴플레인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먼지 하나 없는 쾌적한 방, 사각사각거리는 청결한 시트!

여행의 또 다른 묘미는 깨끗한 호텔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자의 고단한 여독을 풀어주는 편안한 휴식. 그러나 그건 하루 8시간씩 쉴 틈 없이 수십 개의 방을 청소하는 누군가의 노동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혹시 당신은 호텔 룸메이드(Room Maid: 객실을 정리·정돈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여종사원)의 무릎을 본 적이 있는가.

“303호 담당 누구죠?
지난번 컴플레인 들어온 손님인데…”
아이고, 저번에 그 예민한 분이네…

룸메이드의 손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주어진 시간은 30분 체크해야 할 항목은
수십 개가 넘는다

하루 객실 13개 배당 때려치울까 싶다가도
깨끗해진 방 보면 괜히 뿌듯해 온다…
이것도 직업병일까?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303호 담당…누구죠?”

오전 8시40분. 룸메이드 사무실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번 컴플레인 들어왔던 그분입니다. 굉장히 예민한 분이니까 환기 철저히 하고, 방도 한 번 더 닦고….”

오늘 예약된 방은 총 110개. 예약손님 중에서는 늘 ‘요주의’ 인물이 있다. 경력 8년차 룸메이드 주임 이강희씨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빗이나 슬리퍼도 슬쩍 가방에 챙겨 넣고는 다시 갖다 달라면서 항의하는 분도 계시고….”

이강희씨가 들고 있는 자료에는 그동안 접수된 고객 불만사항이 빼곡히 데이터화되어 있다. 이른바 컴플레인 마케팅(complain marketing)이다. 세상 그 어느 누가 고객불만 사항이 달갑겠냐마는, 고객 불만은 반대로 말하면 서비스의 어느 부분이 부족한가를 말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룸메이드에게도 고객만족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고객불만 사항이다.

“오늘은 어제 태풍 때문에 묶어놓은 발코니 의자들…, 다시 깨끗하게 정리도 해야 하니까 빨리빨리 움직입시다.”

한바탕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 날 아침, 바깥 바람이 잦아들고 나자 ‘고객만족’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룸메이드 사무실엔 또 다른 태풍이 몰아친다. 투숙객과 직접 대면하는 일은 없지만, 마치 우렁각시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객만족을 위해 가장 직접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는 경주힐튼호텔

이곳은 관광도시 경주의 별 5개짜리 특1급 경주힐튼호텔.

6층 높이 324개의 객실에 18명의 룸메이드가 일하고 있다. 한 층당 3명의 룸메이드가 한 조로 움직이는데, 예약이 많은 층이냐 아니냐는 순전히 복불복이다.

본격적인 청소를 시작하기에 앞서, 모든 룸메이드가 사무실 벽에 붙은 표시판을 주시한다. 바로 객실 상태를 보여주는 인디케이터다.

“노란 불빛은 현재 고객이 방에 있다는 거예요. 초록 불빛이 들어온 방은 빈 방이니까, 이 방부터 청소를 시작합니다.”

어떻게 방이 비었을 때를 귀신 같이 알고 와서 청소하는가 했더니, 그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모양. 고객의 휴식을 절대 방해해선 안 되기 때문에, 방이 비었다는 걸 알고 있어도 들어가기 전 노크를 해서 한 번 더 확인한다.

만날 하는 일인데도, 방문을 딱 여는 순간 때론 한숨부터 나올 때가 있다. 침대 이불까지 단정히 정돈해 놓고 가는 고마운 고객이 있는가 하면, 젖은 수건이 매트리스 사이에 끼어있는 등 한마디로 난장판인 방도 있다. 방 상태가 어떠하든 방에서부터 욕실, 발코니까지 청소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약 30분.

“국제 먼지는 다 마신다고 보면 됩니다. 일본 먼지, 미국 먼지 할 것 없이 우리가 다 마시죠.”

흔히 룸메이드라 하면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봤던 어여쁜 여성 메이드와 젊은 남성 고객과의 낭만적인 로맨스를 떠올리기 쉽겠지만, 현실에선 송혜교도 없고 원빈도 없다. 무엇보다 도무지 로맨스가 일어날만한 ‘짬’이 나지 않는다. 다음에 열거한 것들이 룸메이드가 방 하나에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다.

<룸메이드 체크 리스트>

침대 커버·시트·베개 커버 교환과 세팅, 객실·욕실의 휴지통 비우기, 커피·와인잔 등 잔 8개와 재떨이 세척 후 마른 천으로 닦기, 냉장고 내부 정리정돈, 옷장 청소와 정리정돈, 테이블 위와 서랍 안 먼지 제거, 50여가지에 이르는 각종 비품 정리정돈 및 보충, 객실문 안팎 닦기, 전등·창문·창틀의 얼룩과 먼지 제거, 진공청소기로 카펫 및 바닥 청소, 방향제 뿌리기, 커튼 세팅, 세면대·욕조·샤워부스·변기·욕실 바닥·배수구 세척과 머리카락 제거, 타월 교환 세팅, 객실 환기, 소모품 점검과 실태 보고…



읽기만 해도 숨이 찬 이 모든 일 중에서, 룸메이드에게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일까.

“그나마 침대가 있는 양실은 낫죠. 서서 일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무릎 꿇고 일해야 하는 한실에 배정되면 그야말로 고역입니다. 우리 룸메이드 중에 관절 성한 사람이 없어요.”

침대 시트 하나 가는 데 약 3분, 그야말로 방 하나를 후다닥 청소해야 한다. 정신없이 쓸고 닦는 기본적인 청소에서부터 인터폰에 이상이 없는지, 전등은 다 들어오는지, 냉장고에 음료는 개수대로 들어있는지 체크하는 것도 룸메이드의 몫이다. 19년째 룸메이드로 일해 온 이경숙씨는 그 바쁜 와중에도 이 방에 머물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예전엔 경주로 신혼여행 오는 분이 많았잖아요? 경주는 우리나라 사람에겐 수학여행 같은 잊지 못할 추억이 있는 곳이고, 외국인에겐 한국문화를 알려주는 도시니까…. 호텔 인상이 여행 인상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해요. 힘이 들긴 하지만 오늘 이 방에선 어떤 고객이 어떤 추억을 만들어갈까…. 사실, 이렇게 생각할 여유는 없어요. 하하.”


◆룸메이드의 천적(?) 인스펙터

이렇게 휘몰아치듯 방 청소를 끝내고 나면 드디어 올 것이 온다.

자자잔 쨘~.

장엄한 BGM을 온몸으로 울려대며 공포의 흰 장갑을 착용하고 나타나는 인스펙터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데, 호텔은 예외인 모양! 그 높은 옷장 선반 위, 아무도 만져볼 것 같지 않은 그곳을 굳이 까치발까지 해가며 먼지를 쓸어보는 것은 물론이요, 컵 손잡이의 방향까지도 철저하게 규율에 따라 체크한다.

“손님은 잘 모르겠지만, 이것도 다 방향이 있어요. 오른손 기준이거든요. 고객이 오른손으로 잡기 쉽게끔 손잡이 각도를….”

무려 22년째 이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정자씨는 룸메이드로 시작해서 인스펙터 업무를 하는 만큼, 그 누구보다 룸메이드의 심정을 잘 아는 사람이다.

“집에서는 이렇게 안 하죠. 다들 마찬가지일 걸요. 깨끗, 정확, 신속해야 하는 일이라 정신적으로 그만큼 고달프니까.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컴플레인이 들어오는 걸 피할 수가 없고….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여행 가서도 가능한 한 방을 깨끗하게 써요.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이지만, 내가 나가고 나면 누군가 들어와서 이 뒷정리를 하겠구나 생각하면 저절로 그렇게 되더라고요.”

하루 평균 시트 세탁량만 무려 1t인 특급호텔. 그러니 다른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경주 힐튼호텔에 근무하는 룸메이드는 대부분 40~50대의 여성. 평범한 가정주부로 관광도시에서 가장 쉽게 취업할 수 있는 직종이다. 사실 청소는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은가. 관광도시에서 어머니로 살아가는 이 여성들은 그렇게 자식들 공부시켰고, 20년 가까이 이 일을 하며 골병이 들어도 아이들 시집장가갈 밑천이라도 한 푼 더 보태고 싶어 일을 쉴 수 없다고 했다.

하루 평균 13개의 객실이 배당되고 거기에 몇 개의 방이 더해지면 몸은 고달파도 수당이 더해지기 때문에 반갑다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방방마다 돌아다니다가,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드디어 허리를 펴게 된다. 특히 오늘 한실을 배정받아 고생했던 룸메이드 경력 14년의 강금주씨는 무릎을 주무르며 말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때려치우고 싶죠. 하지만 그럴 때 있잖아요. 마음이 번잡하면 대청소하는 기분. 청소하다 보면 딴 생각도 사라지고, 또 깨끗해진 방을 보면 괜히 뿌듯하고. 그래서 아마 평생 이 일을 하지 않을까 싶네요.”


◆노동의 가치를 일깨우다

그녀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습관처럼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했다. 쾌적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서 집집마다 누구나 하는 청소. 모든 집안일이 그렇듯 잘해도 표시나지 않는 게 청소지만, 잠시라도 손을 놓으면 눈에 확 띄는 게 또 청소다.

모든 사람이 원래 그렇다는 듯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일, 그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 따지고 보면 우리의 모든 어머니는 출퇴근 시간도 따로 없고, 정년퇴직도 없는 우리의 전속 룸메이드가 아닐까.

호텔방의 사각거리는 쾌적한 침구를 쓰다듬으며 무명 시절 소설가 조지 오웰이 썼던 글귀를 떠올려본다.

“배고팠던 경험이 내게 음식의 진정한 가치를 가르쳐주었듯이, 호텔 노동은 잠의 진정한 가치를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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